퇴계 이황
퇴계는 6살 때 논어를 배우고 19살 대 주희의 '태극도설'로부터 깨달음을 얻었으며 23살에 성균관에 유학했습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는데, 공부하면서 병이 나을 정도였습니다. 퇴계는 사화를 겪으면서 정치적인 일에 민감해졌습니다. 기묘사화 때 서울로 상경했고 을사사화로 수난을 당했습니다. 사화를 겪으면서 권력 다툼에서 멀어지기 위해 부임하지 않은 일이 많았고, 귀향하여 퇴계라는 호를 짓고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퇴계와 기대승은 정지운의 '천명도설'을 가지고 8년 동안 '사단칠정논변'을 벌였는데 당시 대제학의 지위에 있었음에도 23살 어린 기대승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우했습니다. 신분과 나이에 관계없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고 효도에 있어선 체면보다 '화락'이 우선이라고 했으며 자식을 교육할 때는 자상함과 엄격함을 겸비했고 관직에 있으면 이익보단 의리를 먼저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나이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다고 서로를 질투하고 혐오하는 지금 이 시대에서 퇴계의 정신을 본받게 되면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관직에 있으면 이익보다 의리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도 와닿았는데, 이 말이 우리나라 정치인들뿐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 사회 속에서 의리보다는 본인의 이익만을 중요히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2장 리와 기
주자는 기는 현상계이자 상대적인 가치를 갖는 것이며 리기는 원리의 세계이자 절대적인 가치라고 했습니다. 리와 기는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지만 섞이지 않고 시간상의 선후는 없지만 차등적 관계를 맺습니다. 성은 리와 기를 합한 마음의 본체이며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뉩니다. 기와 분리된 순수한 리를 '본연지성'이라고 하며 기에 한정 받는 리를 '기질지성'이라고 합니다.
주자가 맹자의 성선설을 바탕으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언급하여 모든 인간에게 충분히 변화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본성이 악하게 태어났다고 말했다면 수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 그것을 자신의 한계라고 받아들이고 멈출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성은 선하고 탁한 '기질지성'만 걷어내야 한다면 나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계속 수양을 위해 노력할 원동력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이렇게 '성'에 집중해서 마음을 해석한 주자와 중국 유학자들과는 달리 조선 유학자들은 한국적인 관점으로 마음의 '정'의 측면에 집중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3장 태극론
'역'은 변화가 끝없이 계속된다는 뜻이며 세계의 중심이 되는 궁극적 실체인 '태극'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태극'은 모든 변화의 실질적 근거가 된다는 '리'의 궁극성을 표현하는 용어이며 '무극'은 궁극자의 '초원성'입니다. '태극'과 '무극'은 따로 있는게 아니므로 함께 언급되어야 합니다. 조선 학자들은 "태극이 움직여 음과 양을 낳는다"는 구절을 문제 삼았습니다 '태극'은 '리'이고 '음양'은 '기'인데 주자는 '리'가 무위하다고 했습니다.
이공호는 퇴계에게 '리'의 능동성에 대한 주자의 논리적 모순에 관해 물었습니다. 퇴계는 이렇게 주자의 '이기론'과 충돌하는 자신의 관점에 대해 '리'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체용론'을 제시하였습니다. 주자가 '리무위' 라고 한 '리'의 무작위한 측면은 '체'라고 했으며 '리'의 실제 작용을 '용'이라고 했습니다. 퇴계는 '리'의 능동성에 긍정하여 '리'의 절대선이 현실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4장 경사상
퇴계가 사화기 속에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일면적 고찰입니다. 성리학자들은 모든 문제가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화기 때 심도 있게 연구되었습니다. 퇴계는 조광조의 사화가 실패한 이유로서 학문적 역량의 부족을 들었습니다. '치인'을 위한 '수기'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퇴계는 '성학십도'에서도 국가 통치가 원활하기 위해서는 군주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퇴계는 현실도피로서 '수기'를 말한 것이 아니라 '수기'를 토대로 한 '치인'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경'은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덕목이며 성리학자는 이를 모든 일의 근본으로 보았습니다. '경'을 성학의 처음과 끝이라고 하면서 '궁기'보다 '거경'을 더 강조하였습니다. 퇴계는 '성'에서 '정'으로 갈 때 선악이 갈라지며 그때 '경'으로 마음을 보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퇴계는 '경'의 대상으로 '리'를 설정했으며 '리'를 경외의 대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더 특별한 재능과 더 많은 지식을 요구하지만 정작 평화로운 사회가 되기 위한 도덕적 사상인 '경' 사상은 경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리학자들이 '경'을 모든 일의 근본으로 삼은 것처럼 현대인들과 경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덕목들에 집중한다면 현대사회의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5장 퇴계사상
퇴계의 학문을 통해 조선 성리학이 독자성과 전통성을 확보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퇴계학파'는 퇴계를 '성리설'을 옹호하면서 율곡의 '성리설'을 비판했습니다. '퇴계학파' 중 이현일은 퇴계의 '리'의 주재성과 능동성을 부각시켰는데 반해, 장현광은 퇴계의 학맥에 구애받지 않고 '퇴계학파', '율곡학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리경위기설'을 제시했습니다.
조선후기 남인이 '영남남인'과 '기호남인'으로 나뉘고서 '퇴계학파'의 학맥을 이은 사람은 기호 지역의 허목, 윤후, 이익 등이 있습니다. 이익에 이르러선 실학 학풍이 나타나며 천주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학자들과 천주학을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로 나뉘게 됩니다. 이 중 정약용은 '연암파'의 '북학사상'을 접목해서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으며 '다산학'은 종합적인 성격을 띱니다.
'퇴계학파'는 19세기 말 서양과 일본의 침략에 강하게 저항했고 시대 변화에 맞춰 능동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퇴계학'은 400년 동안 한국의 사상과 문화의 원천을 이루었습니다.
『퇴계 이황』을 읽고 느낀 점과 적용해 볼 만한 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퇴계와 같은 선조들의 철학적 사유와 생각을 단순히 옛날 생각으로 여기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적용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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